본문 바로가기

일본 갤러리/정치경제

(22)
니카이 도시히로의 파벌 지수회(志帥会),니카이파(二階派)에 대해서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지수회(志帥会,しすいかい)는 1998년 11월 정책과학연구소 파벌 후계를 둘러싼 대립에서 야마자키 타쿠가 이탈하자,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중심으로 하는 잔류 세력이 당시 청화회를 이탈한 가메이 그룹과 통합하게 된 것이 현재의 지수회다. 고이즈미 내각 당시 ‘저항세력’으로 분류되어 고이즈미 개혁을 비판하는 세력이 되었다. 2005년 우정민영화에 반대하여 소속의원들이 자민당 공천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니카이 도시히로가 2014년까지 회장을 맡았으나,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하면서 회장 자리는 공석이다. 결성 1998년 11월 30일, 정책..
다케시타 와타루의 파벌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다케시타파(竹下派)에 대해서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는 보수본류를 대표하는 파벌이다. 현재 중의원 총 54명의 의원이 속해 있는 자민당 내 제3파벌이며, 다케시타 와타루가 회장으로 있다. 보수합동 시기의 자유당계의 목요클럽을 계승하며,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반기를 든 다케시타 노보루와 가네무라 신을 중심으로 1987년 7월 경세회를 결성한 것이 기원이다. 다케시타 노보루파(竹下登派) 시대 1985년 2월 7일, 자민당을 탈당한 후에도 파벌 영수로써 영향력을 이어나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 角栄)에 반기를 든 다케시타 노보루(竹下 登), 가네마루 신(金丸 信)을 중심으로 목요 클럽..
이시하라 노부테루의 파벌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이시하라파(石原派)에 대해서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きんみらいせいじけんきゅうかい)는 자유민주당의 파벌이다. 회장은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 伸晃)이기에 통칭 이시하라파(石原派) 라고 불린다. 1998년 11월 30일, 재정과학연구소(나카소네파(中曽根派)→와타나베파(渡辺派)→旧와타나베파)에서부터 분리 독립한 야마사키 타쿠(山崎 拓) 그룹 37명에 의해 결성되었고, 무투파(武闘派, 무력 투쟁파) 집단으로써 형성되어 있다. 파벌 결성 당초는 헌법 개정에 열심이었으며, 과거에 파벌 멤버 전원에게 개정론과 정책집의 단행본을 출판했다. 당초는 야마나카 사다노리(山中 貞則)가 야마사..
아소 다로의 파벌 지공회(志公会), 아소파(麻生派)에 대해서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지공회(志公会, しこうかい)는 일본 자유민주당의 파벌로 통칭 아소파(麻生派)라 불린다. 중의원 43명, 참의원 13명으로 총 57명의 의원들이 소속되어있는 파벌이며, 통칭 아소파(麻生派)이던 위공회(為公会), 통칭 산토파(山東派)이던 번정정책연구소(番町政策研究所), 통칭 사토 그룹(佐藤グループ)이던 천원회(天元会)를 전신으로 하며 아소 다로(麻生 太郎)를 중심으로 2017년 7월 3일에 설립된 파벌이다. 대용회(大勇会) 1995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시 총재는 미야자와파의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였으나, 같은 미야자와파의 실력자였던 가토 고이치..
아베 신조(安倍 晋三)의 파벌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호소다파(細田派)에 대해서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せいわせいさくけんきゅうかい, 청화정책연구회)는 자민당 내에서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나 굉지회(宏池会)와 함께 보수 명문파벌이며, 보수합동 시기의 일본민주당(더 오래 전에는 일본자유당)의 혈통이다. 이전 명칭은 세이와회(清和会, せいわかい, 청화회)이며, 약칭은 세이와연(清和研, せいわけん, 청화연)이다. 통칭 호소다파(細田派)이며, 후쿠다파(福田派)→아베파(安倍派)→미츠즈카파(三塚派)→모리파(森派)→마치무라파(町村派)→호소다파(細田派)로 이어져왔다. 자유민주당의 '반(反)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노선을 기원으로..
일본 자유민주당 파벌에 대한 이해 파벌 내에 의원 간의 결속이 있으며, 여름에는 '빙수값(氷代, 빙대, 여름 보너스를 의미하는 말)', 겨울에는 '떡값(餅代, 병대, 연말 보너스를 의미하는 말)' 등 소속의원에게 자금을 보조해주는 파벌도 존재한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신인 의원들은 졸병 의원(陣笠議員)으로써 각 파벌에 들어가고, 당선 횟수와 경력을 쌓아올리며 파벌의 방향을 따라가며 정치활동에 힘쓴다. 이전 일본의 선거 방식이 중선거구제였던 당시 자유민주당은 각 선거구에 여러명의 후보자를 내세우고 있었으나, 같은 선거구에서 동일 파벌에 속한 후보자가 함께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동일 선거구에 있어서 자유민주당의 후보자는 보수층의 표를 서로 빼앗으며 경쟁해왔었다. 자민당의 55년 체제에서 자민당은 다섯개의 파벌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의 파벌 굉지회(宏池会), 기시다파(岸田派)에 대해서② 기시다 후미오의 파벌 굉지회(宏池会), 기시다파(岸田派)에 대해서① 고이즈미 정권 5년 반의 장기 정권이었던 고이즈미 정권에 있어서는 타니가키파는 타니가키 자신이 거의 일관해서 주요 각료를 담당했기때문에 사실상 주류파로써 정권을 유지하는 한 편, 호리우치파는 정권에서 거리가 멀었고, 2003년 총재 선거 등에서 파벌 내 대립이 격화됐다. 2005년은 이른 바 우정(郵政)법안과 그 후의 우정 해산을 둘러싸면서, 호리우치 회장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탈당으로 발을 돌렸고, 고가도 기권표를 던지면서 서약서을 쓰게 된 상황에서 겨우 공인을 얻는 등 쓴 맛을 보게 되었다. 고이즈미의 '탈파벌(脱派閥)' 방침으로 인해 파벌이 약해지던 시기였지만, 상대적으로 고이즈미의 출신 파벌인 세이와회(清和会)의 존재감은 커져만 갔..
기시다 후미오의 파벌 굉지회(宏池会), 기시다파(岸田派)에 대해서①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굉지회(宏池会, こうちかい)는 자민당 파벌 중에서 가장 오래된 파벌이다. 통칭은 기시다파(岸田派)다. 굉지회는 이케다 하야토(池田 勇人)가 사토 에사쿠(佐藤 栄作)와 절교를 하면서 만든 것이 시작이며, 통칭의 변천은 이케다파(池田派)→마에오파(前尾派)→오히라파(大平派)→스즈키파(鈴木派)→미야자와파(宮澤派)→가토파(加藤派)→고가파(古賀派)→기시다파(岸田派)로 이어진다. 독립한 파벌도 포함한다면 굉지회 영수의 출신지 및 지반은 주로 히로시마 현, 교토 현, 후쿠오카 현, 도호쿠 지방이다. 개요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의 직계 제자인 이케다 하야오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