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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갤러리/정치경제

아소 다로의 파벌 지공회(志公会), 아소파(麻生派)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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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아소 다로

 

지공회(志公会, しこうかい)는 일본 자유민주당의 파벌로 통칭 아소파(麻生派)라 불린다. 중의원 43명, 참의원 13명으로 총 57명의 의원들이 소속되어있는 파벌이며, 통칭 아소파(麻生派)이던 위공회(為公会), 통칭 산토파(山東派)이던 번정정책연구소(番町政策研究所), 통칭 사토 그룹(佐藤グループ)이던 천원회(会)를 전신으로 하며 아소 다로(麻生 太郎)를 중심으로 2017년 7월 3일에 설립된 파벌이다.

 

대용회(大勇会)

고노 요헤이

1995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시 총재는 미야자와파의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였으나, 같은 미야자와파의 실력자였던 가토 고이치(加藤 紘一)는 고노의 재선을 지지하지 않고, 다른 파벌이던 오부치파(小渕派)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 龍太郎)를 지지했다. 가토는 하시모토의 당 총재 당선에 따라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했다. 그 결과, 고노와 가토의 대립은 결정적이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12월, 미야자와파 영수에 가토가 오르면서 가토파가 되면서, 고노가 반발, 아소 다로를 포함해 파벌 내의 가토 회장 취임에 비판적이던 의원 15명과 파벌을 떠나면서, 다음 해 1월 고노를 높게 평가하고 있던 미키파(三木) 출신의 구지라오카 효스케(鯨岡 兵輔)를 최고 고문으로 데려와, 정식 파벌로써 굉지회(宏池会)계()의 대용회(고노파 혹은 고노 그룹)을 만들었다.

대용회는 1992년 고노가 미야자와 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을 맡고있던 도중에 파벌 횡단적(横断的)인 정책집단으로써 결성되었으나, 그 시기 이후부터 고노와 굉지회를 떠난 가스야 시게루(粕谷 茂) 세력의 반가토 색이 강한 멤버가 참가했다. 이러한 이념 및 정책에 의해 반가토라고 불리는 인간관계로 모여 성립한 파벌이었기 때문에, 영수는 친중(親中)이면서 비둘기파이던 고노였으나, 파벌의 멤버는 아소를 필두로 한 친대만파면서 매파 의원들이 대다수였기에, 명확한 접점이 없었다. 2000년 가토의 난으로 반가토로 불린 파의 성격도 있었고, 모리 내각 불신임 결의에 반대도 하였다.

그 이후 에토 세시로(衛藤 征士郎)가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일본 방문을 고노가 집요하게 방해했다는 이유로 파벌을 떠났고, 이후 매파 색이 강하던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에 들어갔다. 고노가 중의원 의장에 취임한 2003년 11월 이후 당 파벌을 나가기로 한 것으로 인해, 단장이던 아이자와 히데유키(相澤 英之) 전 중의원 의원이 파벌을 맡게 되었다. 여담으로 고노 요헤이의 친부이던 고노 이치로(河野 一郎)가 이끌던 고노파(河野)와는 관련성이 없다.

 

위공회(為公会)

2006년 9월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약소(弱小) 파벌이던 고노 그룹 소속의 아소 다로가 136표를 얻어 아쉽게 2등으로 당선되지 못 하였으나, 차기 총재의 유력후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총재 선거 2일 후인 9월 22일, 고노 요헤이가 아소에게 고노 그룹 회장 취임에 대해 떠보자, 아소는 이후 정세를 지켜보고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2006년 12월 15일, 아소 다로가 대용회를 계승하면서 신파벌로써 위공회, 통칭 아소파가 탄생하게 되었다. 대용회(고노 그룹)은 8년이라는 역사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아소가 탄생시킨 신 파벌에는 중의원 의장의 고노 요헤이를 제외한 구 고노 그룹 전 의원 11명이 참가, 무파벌 중의원이던 고노이게 요시타다(鴻池 祥肇), 야마구치 슌이치(山口 俊一), 아카마 지로(赤間 二郎), 스즈키 케이스케(鈴木馨祐)가 참가했다. 파벌 명은 중국의 고전 예기(礼記)의 천하위공(天下為公)에서 따왔다.

굉지회 3파벌이던 다니가키파(谷垣派), 고가파(麻生派), 아소파를 재결집하자는 대굉지회구상(大宏池会構想)이 화제가 되었으나, 다니가키파와 아소파가 각자 총재 후보를 내세우면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면서, 2007년 총재 선거에서 아소파와 반아소세력(다니가키파와 고가파)라는 대립 양상이 보여지면서, 아소파를 제외한 두개의 파벌이 중굉지회구상(中宏池会構想)이라는 명목하에 2008년 5월 13일에 합쳐졌다.

2007년 9월 23일에 치뤄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아소파 이외 모든 파벌 영수가 후쿠다 야스오(福田 康夫)를 지지하면서, 아소 포위망이라고 불리는 불리한 상황이 일어났다. 하지만, 후쿠다 야스오의 압승을 경계하는 의원 심리도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전 선거를 크게 상회하는 197표를 얻으면서, 아쉽게 낙선한 아소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게 되는 모양이 돼버렸다. 그 이후 후쿠다 정권에 의해 당인사, 각료인사에서 아소파에서 선출되지 않고, 비주류파가 되었다.

하지만, 후쿠다 정권의 자민당이 지지율이 떨어지는 중에 비주류파였던 아소가 영향력을 점차적으로 늘려갔고, 2008년 8월 1일 내각 개조 및 당 임원 인사에 의해 아소 다로가 간사장에 복귀, 스즈키 쓰네오(鈴木 恒夫)가 문부과학대신에 취임하면서 주류파가 되었다. 2008년 9월에 실시된 후쿠다 야스오 총재 퇴임에 따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회장이던 아소가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었다.

그 이후 총재 파벌이 되어 순조롭게 세력을 늘려갔고, 소속 의원수 21명을 늘려갔으나, 2009년 9월 제45차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대패를 하면서 12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통일회파 '자민당주당 개선 클럽(自由民主党・改革クラブ)'를 결성한 것에 따라, 이바라키현(茨城県) 제7구(第7区) 당선 의원인 나카무라 기시로(中村 喜四郎)가 파벌에 참가하면서, 이바라키현 선거구의 하세가와 다몬(長谷川 大紋) 참의원이 이에 반발하여, 자민당을 탈당했다.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후쿠오카현(福岡県)이 기반인 아소가 후쿠오카현 선거구에서 출마한 오이에 사토시(大家 敏志)의 선거대책본부장에 취임, 선거 후에 오이에와 후지가와 마사히토(藤川 政人) 2명이 새롭게 입회했다.

2012년 봄,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가 이끄는 번정정책연구소와 합류를 목표로 한 공부회를 발족했다.

같은 해 9월에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고무라파와 협력하여 아베 신조(安倍 晋三)를 지지, 당초 불리했던 아베를 당선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2009년 중의원 선거 이래 영향력 쇠퇴를 지적당한 아소는 순식간에 당내 첫번째 유력자가 되었다. 더욱이 3개월 뒤 제46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 압승으로, 구심력을 높여간 아소파는 신인 의원을 많이 들이고, 당내에서의 영향력을 늘려갔다. 그 이후 제2차 아베 내각 발족에 따라 아소는 부총리 겸 재무대신 겸 금융담당대신으로 입각했다.

2014년 9월 3일 제2차 아베 개조내각에서는 같은 파의 야마구치 슌이치가 내각부특명담당대신(内閣府特命担当大臣,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담당, 과학기술정책, 우주정책, 소비자및식품안전)로써 처음 입각하고, 부총리 겸 재무대신이던 아소에 이어 아소파는 요직을 확보하게 되었다.

2015년 10월 7일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내각에서는 같은 파의 고노 다로(河野 太郎)가 국가공안위원회위원장(国家公安委員会委員長) 겸 내각부특명담당대신(소비자및식품안전, 규제개선, 방재)로써 첫 입각을 하게 되었다.

2015년 11월 13일, 번정정책연구소 산토 아키코(山東 昭子) 회장과 합병을 위해 협의를 진행했다.

2016년 8월 3일 제3차 아베 제2차 개조 내각에서는 같은 파의 마츠모토 쥰(松本 純)이 국가공안위원회위원장 겸 내각부특명담당대신(소비자및식품안전, 방재)로써 처음 입각했다.

2017년 2월 9일, 전 내각부특명담당대신(경제재정정책담당)이던 아마리 아키라(甘利 明)와 가나가와현(神奈川県)을 기반으로 하는 아마리의 측근인 다나카 가즈노리(田中 和徳), 야마자와 다이시로(山際 大志郎), 후쿠다 미네유키(福田 峰之), 나카야마 노리히로(中山 展宏)가 최고일본(さいこう日本, 자민당 내의 공부회)에 입회했다.

2017년 5월 15일, 번정정책연구소와 합류로 인해 신파벌을 결성하게 되었다. 다시 사토 쓰토무(佐藤 勉)의 유린회(有隣会)를 나온 멤버들이던 천원회 일부도 참가하게 되었다.

 

지공회(志公会)

2017년 7월 3일, 지공회가 59명의 멤버로 발족하게 된다. 산토파 소속의 구마다 히로미치(熊田 裕通)와 천원회와 유린회를 빠져나온 소노다 슈코(園田 修光)는 파벌 참가를 보류한다. 또 산토파 전회장이던 오시마 다다모리(大島 理森)는 현재 중의원 의장으로써 자민당회파 및 파벌을 탈당 중이다.

파벌 명칭에 대해서는 아소는 '지(志) 높게 가지고, 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志を高く持ち、公を腹に収めてやってもらいたい)'고 설명했다.

2017년 9월 13일, 소속 참의원 의원 15명이 파벌 내에 신그룹인 상공회(上公会)를 결성하고, 산토 아키코가 회장으로 취임한다. 참원 자민당에서는 호소다파(細田派), 누카가파(額賀派), 기시다파(岸田派) 3개 파가 인사에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고, 참의원 측에서 아소파의 존재감을 높여갔다.

2019년 4월 후쿠오카현 지사 선거에서 아소가 3선을 목표로 둔 오가와 히로시(小川 洋)에 대항해 전 후생노동관료였던 다케우치 가즈히사(武内 和久) 옹립을 주도했으나, 후쿠오카현 자민당 분열로 인해 참패한다. 기타가와 도모카츠(北川 知克)의 사망으로 인해 죽은 자를 위한 복수전(弔い合戦, 사자복수전)으로 자리매김한 중의원 오사카12구(大阪12区) 보궐선거에서도 의석을 지키지 못 했다. 또, 국토교통부대신(国土交通副大臣)을 인책 사임한 쓰카다 이치로(塚田 一郎)의 실언은 통일지방 선거의 타이밍과 겹쳐, 각 정당 지방 조직에서 비판을 받았다.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는 현직 8명 내 7명이 당선했고, 4명이 낙선한 기시다파와 소속 참의원 의원이 동수가 되었다. 그 결과, 참의원 자민당의 호소다파, 누카가파, 기시다파 3파 체제의 균형에 변화가 생겼고, 아소파의 존재감이 증가되었다.

선거 이후 임시국회에서 아소파 회장 대리인 산토 아키코가 참의원 의장에 취임했다. 3개 파 이외에서 의장 선출은 2004년 이후 처음이었으며, 중참 양원의 의장을 아소파 출신의 의원이 맡게되었다.

 

임원

회장 회장대리 부회장 사무총장 사무총장대리 사무국장 사무국장대리 고문
아소 다로
(麻生 太郎)
모리 에이스케
(森 英介)
사토 쓰토무
(佐藤 勉)
야마구치 슌이치
(山口 俊一)
스즈키 슌이치
(鈴木 俊一)
다나하시 야스후미
(棚橋 泰文)
에토 아키노리
(江渡 聡徳)
마츠모토 쥰
(松本 純)
이노우에 신지
(井上 信治)
아마리 아키라
(甘利 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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