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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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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노부테루의 파벌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이시하라파(石原派)에 대해서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지공회(志公会)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지수회(志帥会) 굉지회(宏池会) 수월회(水月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 근미래정치연구회(近未来政治研究会,きんみらいせいじけんきゅうかい)는 자유민주당의 파벌이다. 회장은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 伸晃)이기에 통칭 이시하라파(石原派) 라고 불린다. 1998년 11월 30일, 재정과학연구소(나카소네파(中曽根派)→와타나베파(渡辺派)→旧와타나베파)에서부터 분리 독립한 야마사키 타쿠(山崎 拓) 그룹 37명에 의해 결성되었고, 무투파(武闘派, 무력 투쟁파) 집단으로써 형성되어 있다. 파벌 결성 당초는 헌법 개정에 열심이었으며, 과거에 파벌 멤버 전원에게 개정론과 정책집의 단행본을 출판했다. 당초는 야마나카 사다노리(山中 貞則)가 야마사..
일본 자유민주당 파벌에 대한 이해 파벌 내에 의원 간의 결속이 있으며, 여름에는 '빙수값(氷代, 빙대, 여름 보너스를 의미하는 말)', 겨울에는 '떡값(餅代, 병대, 연말 보너스를 의미하는 말)' 등 소속의원에게 자금을 보조해주는 파벌도 존재한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신인 의원들은 졸병 의원(陣笠議員)으로써 각 파벌에 들어가고, 당선 횟수와 경력을 쌓아올리며 파벌의 방향을 따라가며 정치활동에 힘쓴다. 이전 일본의 선거 방식이 중선거구제였던 당시 자유민주당은 각 선거구에 여러명의 후보자를 내세우고 있었으나, 같은 선거구에서 동일 파벌에 속한 후보자가 함께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동일 선거구에 있어서 자유민주당의 후보자는 보수층의 표를 서로 빼앗으며 경쟁해왔었다. 자민당의 55년 체제에서 자민당은 다섯개의 파벌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의 파벌 굉지회(宏池会), 기시다파(岸田派)에 대해서② 기시다 후미오의 파벌 굉지회(宏池会), 기시다파(岸田派)에 대해서① 고이즈미 정권 5년 반의 장기 정권이었던 고이즈미 정권에 있어서는 타니가키파는 타니가키 자신이 거의 일관해서 주요 각료를 담당했기때문에 사실상 주류파로써 정권을 유지하는 한 편, 호리우치파는 정권에서 거리가 멀었고, 2003년 총재 선거 등에서 파벌 내 대립이 격화됐다. 2005년은 이른 바 우정(郵政)법안과 그 후의 우정 해산을 둘러싸면서, 호리우치 회장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탈당으로 발을 돌렸고, 고가도 기권표를 던지면서 서약서을 쓰게 된 상황에서 겨우 공인을 얻는 등 쓴 맛을 보게 되었다. 고이즈미의 '탈파벌(脱派閥)' 방침으로 인해 파벌이 약해지던 시기였지만, 상대적으로 고이즈미의 출신 파벌인 세이와회(清和会)의 존재감은 커져만 갔..